김종필 전총리 별세-3김 역사 속으로 :: 따랑로미Story !DOCTYPE html> insert_pixel_code_here

김종필(향년 92세) 전 국무총리가 6월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하셨습니다. 신당동 자택에서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미 사망한 상태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합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치러질 것이라고 합니다. 김종필 전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극으로 풍운의 정치인.영원한 2인자.처세의 달인.로맨티스트 정치인.중앙정보부 창설자 등 많은 별칭처럼 보는 시각이 다양합니다.

이로써 파란만장했던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의 역사는 마지막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습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청와대와 정치권은 떠나신 분에 대한 깊은 애도와 현대정치사의 의미를 강조했답니다.

 

 

3김김종필 JP

 

 

대한민국 현대사에 많은 발자취를 남기며 오늘 떠나셨습니다. 많은 고비와 어려움 속에서도 3김 시대를 열었고 민주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일부에서는 정치인이라면 다 욕심과 허욕으로만 일관한다고 보지만 나름의 뜻이 없다면 그 오랜 세월을 인내하며 살아온 삶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쿠테타도 승리하면 정당화 되는 것이 역사이지 않습니까? 보는 시각에 따라서 역사는 천차만별이지만 많은 공로와 정치에 공헌을 한 업적도 인정은 받아 마땅합니다. 2인자로서 힘을 보태주고 첫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인이며 전직은 군인입니다. 임해군, 광해군 형제의 외조부이며 안경공 김영정의 증손인 해녕부원군 김희철의 방계 후손으로 1926년 1월 7일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중.고등학교는 공주에서 다녔으며 1947년 서울대 사범대 2년을 수료하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호는 운정이며 40년 정치가로 활동하며 국무총리를 6년 반을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 최측근에 있었으나 끊임없는 견제로 미묘한 관계였다고 합니다. 충청도에서는 정치인으로 주목받았던 상징과도 같은 분으로 5.16 군사정변 주역으로 박정희 전대통령과 인척관계입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에 가담했으며 중앙정보부(국정원)을 창설해 1963년까지 초대부장으로 재임했습니다.

 

그 후에 공화당 소속으로 의장과 부총재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이후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으면서 정치 자금 확보 목적으로 일으킨 부정부패사건으로 책임을 지고 외유했던 적이 있습니다.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잡을 때 김전 총리의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환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지역 간 대결이 강했던 1987년 대선과 13대 총선에서 충남과 충북 지역에서 많은 득표를 얻으면서 충청권의 상징으로 부각되었습니다. 1990년 노태우.김영삼 전대통령과 민주자유당을 창당, 3당 합당에 참여하여 거대 보수정당을 탄생시켰습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선 후보를 지원했습니다. 1993년 자유민주연합 총재를 역임했으며 1997년 대선에서는 야당연합으로 참여해 김대중 전대통령을 당선시키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1996년 자유민주연합 명예총재 1998.08~ 2000.01 제 31대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지낸 바 있습니다.

 

2004년 제 17대 총선거에서 자민련의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서며 헌정 사상 초유의 10선에 도전했으나 정당득표율이 2.8%에 그치며 마지막 꿈이 좌절되었습니다. 4월 9일 자민련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계에서 은퇴했습니다.

 

3김의 마지막 남은 분이 이제 떠나셨습니다. 민주화의 열기를 부르짖던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84번으로 이 분들의 정치 생명과 같이 성장한 세대입니다. 옛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면서 찬반 양론이 부각되지만 민주화로 우리 사회에 많은 노력을 하신 분으로서 정치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편히 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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